상처가 아문 자리, 차오르는 새살처럼

가정폭력 피해자 김주은 씨 이야기

 

행복할 것만 같았던 결혼이 악몽이 될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9년의 결혼생활에서 남은 것은 남편의 폭력으로 인한 몸과 마음의 상처뿐…. 아이들에게만큼은 더 이상의 아픔을 남기지 않으려 이혼을 결심했지만, 세 아이의 양육을 홀로 감당해야 하는 현실은 녹록지가 않습니다.

(본 사연의 대상자 보호를 위해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폭력으로 얼룩진 결혼생활

 

2011년, 처음 만난 남편은 듬직한 모습이었습니다. 이 사람이면 남들처럼 평범하게,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살 수 있을 거라는 확신으로 만난지 3개월 만에 결혼식을 올 렸어요. 하지만 저의 바람과 달리, 결혼생활은 시작부터 힘들고 위태로웠습니다. 첫째 아이가 미숙아로 태어나면서 남편과 저 사이의 균열은 더욱 선명해졌죠. 첫째 아이, 지우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줄곧 의식불명 상태입니다. 저는 지우의 목소리를 들어보지도, 안아보지도 못했어요. 오늘이면 눈을 뜰까, 내일이면 일어날까 하는 기대로 하루하루를 보냈고, 그 사이 병원비는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그때부터였을 겁니다. 남편이 언성을 높이고 주먹을 휘두른 것이….

처음에는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여자를 때린 것이 처음이라며,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거라고 했어요. 하지만 남편의 폭행은 갈수록 심해졌고 급기야 작년 8월, 저는 피투성이가 된 채로 응급실에 실려 갔습니다.

그날, 무슨 정신으로 도망쳐 나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아요. 이러다가 진짜 죽겠다는 생각뿐이었던 것 같아요. 아이들에게 나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참고 살았는데…. 이미 오랜 시간 폭력에 노출된 아이들은 정서적으로 불안한 상태였고, 남편의 폭력이 아이들에게 이어질까 불안했던 저는 결국 이혼을 결심했습니다.

 

 

 

절망 속에서 찾아온 희망

 

그날 이후 저는 음식점에서 하루 열두 시간씩 일을 합니다. 악착같이 벌어서 아이들과 나 자신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으로요. 하지만 지우의 병원비와 남편이 실직한 동안 밀린 월세, 두 아이의 양육비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한적십자사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적십자에서 진행하는 폭력피해자 프로그램을 통해 도움을 주고 싶다고요. 제 사연을 적십자 홈페이지에 올려 모금도 진행해주셨는데요. 많은 분의 도움과 적십자의 추가 지원 금으로 가장 큰 부담이었던 월세와 지우의 밀린 치료비 일부를 변제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저의 결혼생활은 비극으로 끝났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배운 것이 있다면 세상에는 좋은 사람이 더 많다는 것입니다. 벼랑 끝으로 내몰린 저를 찾아 손 내밀어준 대한적십자사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얼굴도 모르는 저를 위해 선뜻 도움을 건넨 사람들. 얼마 전에는 경북 칠곡군에 사는 어느 삼 남매가 어려운 처지에 있는 친구를 위해 써달라며 보내온 학용품도 전달받았습니다. 학용품과 함께 동봉된 편지 속에는 진심 어린 응원도 담겨 있었어요. 그 편지를 읽으며, 우리 아이들도 꼭 이렇게 마음이 예쁜 사람으로 키워야겠다 다짐했어요.

 

 

 

두려움을 걷어내고 다시 시작

 

저와 남편은 현재 별거 중으로 마지막 이혼 절차를 앞두고 있습니다. 아직 아이들은 엄마, 아빠가 이혼한다는 사실을 몰라요. 촛불만 보면 아빠가 엄마 때리지 않게 해달 라고, 엄마랑 아빠랑 행복하게 살게 해달라고 소원을 비는 아이들에게 차마 ‘이혼’이 라는 말을 꺼낼 수가 없었거든요. 어쩌면 저 역시 두려운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아빠의 빈자리까지 채워줄 수 있을까, 실패한 결혼생활처럼 내 인생도 끝나버리는 건 아닐까…. 하지만 저만큼이나 아프고 무서웠을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용기를 내보려 합니다. 상처가 아문 자리에 새살이 돋듯, 열심히 살다 보면 저와 아이들의 삶에도 좋은 날이 찾아오겠지요. 여러분께 받은 응원이 부끄럽지 않도록 씩씩하게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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