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업을 통한 선행이 의료인의 자부심이고, 직업을 통한 봉사는 최고의 봉사라고 생각합니다."
구정회 대한적십자사 부산지사 회장 겸 은성의료재단 회장(79)은 40년 넘게 정형외과 전문의로 의료 현장을 지키며 이 신념을 지켜왔다. 그에게 나눔 정신은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말한 '아비투스', 즉 개인이 살아온 환경이 만든 제2의 천성과도 같다.
한국전쟁을 겪으며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착하게 사는 것'은 남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배웠다. 교직에 몸담았던 아버지는 인자한 원칙주의자였고, 어머니는 어려운 이웃과 친척을 그냥 지나친 적이 없었다. 구 회장은 "어려운 사람을 도우며 살아야 한다는 가치관이 자연스레 몸에 뱄다"고 말했다. 병원을 개원하고 형편이 어려운 환자들에게 진료비를 받지 않고 "집에 가서 밥 잘 먹고 보약을 지어 먹으라"고 몇 푼 쥐여 돌려보낸 게 첫 나눔이었다.
구 회장은 은성의료재단을 이끄는 경영자이기도 하다. 1978년 구 회장의 정형외과, 배우자인 문화숙 원장의 산부인과로 출발했지만 현재는 급성기 병원 5곳, 요양병원 7곳을 운영하는 의료법인으로 성장했다. 구 회장은 "리더는 법률적·경제적·윤리적·자선적 책임을 모두 져야 한다"면서 "이 네 가지 책무의 균형을 잘 잡아야 하며, 특히 자선적 책임을 소홀히 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은성의료재단의 비전은 '환자에게 좋은 병원, 직원에게 좋은 병원, 사회에 좋은 병원'이다. '좋은병원'들은 지역의료의 최전선을 지키고 있는데, 특히 좋은문화병원은 48년간 부산 지역의 여성·분만 의료를 책임지고 있다. 구 회장은 "병원 경영을 생각한다면 산부인과를 축소하는 게 맞을 수도 있지만, 시민들이 필요로 하는 진료를 이어나가는 것이 지역 병원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직원들과 함께하는 나눔 문화도 이어오고 있다. 12개 병원 직원 5000여 명이 매달 3000원씩 기부하고, 재단이 1억5000만원을 보태 연간 총 3억원을 기부한다.
의료 현장 밖에서도 봉사는 이어졌다. 구 회장은 부산범죄피해자지원센터 이사장을 맡아 범죄 피해자와 유가족을 지원하고, 심리 상담과 학업 복귀를 돕는 일에 힘썼다.
구 회장은 의대를 졸업하고 1972년 첫 직장 생활을 서울적십자병원에서 시작하며 대한적십자사와 인연을 맺었다. 2004년 북한 용천 열차 폭발 사고 때는 대한병원협회와 대한적십자사가 꾸린 의료지원단에 파견돼 복구 활동을 도왔다. 이후 2020년 대한적십자사 부산지사 상임위원을 거쳐 지난해부터 부산지사 회장을 맡고 있다.
회장을 맡은 뒤 특히 마음에 남는 이들은 독거노인이었다. 적십자 자원봉사단은 홀로 지내는 어르신들에게 밑반찬을 전달하고 주기적으로 세탁을 해드리며 안부를 살피고 있다.
구 회장의 가장 큰 목표는 부산 지역에 '일상 속 기부 문화'가 더욱 단단히 뿌리내리는 것이다. 그는 "큰 금액이 아니어도 괜찮으니 누구나 부담 없이 기부에 참여할 수 있는 건강한 나눔 생태계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구 회장이 생각하는 기부는 혼자 하는 선행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일이다. "제 손길이 닿은 곳이 조금이나마 따뜻해졌다면, 제 삶은 더할 나위 없이 가치 있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