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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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네 번째 이야기 김기현 씨

    다시 숨 쉴 수 있는 그날을 꿈꾸며

    수술 부위 초음파 사진
    수술 부위 초음파 사진

    세상에 그런 병이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치료 방법은커녕 원인도 모른 채 숨 쉬지 못해 죽을 수도 있는 병, 특발성 폐섬유증. 진단 후 생존 기간이 3~5년이라더니, 이제 가정용 산소 호흡기에 의지해도 숨은 점점 가쁘고 내 몸조차 가눌 수가 없네요. 이런 제가 다시 숨 쉴 수 있을까요? 숨이 멎는 고통에서 이제 그만 벗어나고 싶습니다.

    행복한 가정을 꿈꾸던 유년시절

    심전도 검사 중인 김기현 씨
    심전도 검사 중인 김기현 씨

    올해 제 나이는 서른여덟 살입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아 가정을 꾸릴 나이죠.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일상이 저에게는 ‘꿈’이 되어버렸습니다. 어려서 갖지 못한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싶었는데, 이제는 제 몸 하나 지키기도 힘든 상황에 이르렀네요. 사실 저희 부모님은 제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되던 해에 이혼하셨습니다. 이후로 재혼하신 아버지와 함께 살았지만 여느 가정처럼 돌봄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지금도 어린 마음에 친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유년시절을 보냈던 기억이 나는데요. 엄마가 보고 싶을 때, 힘든 일이 생길 때면 저는 운동장으로 나가 축구공을 차며 외로움을 달래고 축구선수의 꿈을 키우기도 했죠. 하지만 그 꿈도 오래가지 못 했습니다. 좋지 않은 가정사와 아버지의 반대로 꿈을 접은 후 실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했거든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에 다녀온 저는 바로 부산에 있는 케이블 TV 회사에 취직했습니다. 일은 힘들고 그에 비해 급여는 넉넉지 않았지만, 열심히 살면 언젠가는 저도 꿈에 그리던 가정을 이루고 예쁜 아내, 토끼 같은 자식과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너무 앞만 보고 달린 탓이었을까요. 저도 모르는 사이, 제 폐는 조금씩 굳어가고 있었습니다.

    수술 후 대화도 수월해졌다는 김기현 씨
    수술 후 대화도 수월해졌다는 김기현 씨 다리 힘을 키우기 위해 걷기 운동을 하는 모습
    다리 힘을 키우기 위해 걷기 운동을 하는 모습

    원인도, 치료 방법도 모르는 병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저는 심한 호흡곤란 증상과 마른기침, 급격한 피로감에 시달렸습니다. 처음에는 일이 힘들고 고단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제 짐작과는 다르게 ‘간질성 폐 질환’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철저한 건강관리와 정기적인 검사로 병을 다스려야 했지만 20만 원짜리 월셋집에서, 여러 가지 일을 전전하며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에도 바쁜 저로서는 그럴 여유가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새어머니의 반대로 경제적인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기에 회사를 그만둘 수도 없었고, 직업 특성상 규칙적으로 휴가를 내고 병원에 다닐 수도 없었거든요. 그렇게 하루하루 버티듯이 살아가던 2012년, 증세는 극도로 악화되었습니다.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찾은 병원에서는 ‘특발성 폐섬유증’이라고 하더군요. ‘특발성 폐섬유증’은 만성적으로 진행되는 간질성 폐 질환의 하나로 폐포(허파꽈리) 벽에 만성 염증 세포들이 침투해서 폐를 딱딱하게 하고, 폐 조직의 심한 구조적 변화를 일으키며, 점차 폐 기능이 저하되어 사망하게 되는 질환이라고 합니다. 더욱 절망스러운 것은 아직 병의 원인도 모르고, 효과적인 치료 방법도 없다는 것. 진단 후 생존 기간은 3~5년 정도에 불과하며, 시간이 지날수록 호흡곤란이 심해져 일상생활도 힘들어지게 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저도 모르게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숨을 쉬지 못해 죽는 병이라니, 치료 방법이 없다니요. 제 나이 그때 겨우 서른둘이었는데요.

    단 하나의 희망, 폐 이식 수술

    그 후로 저는 1년이 넘게 부산과 서울을 오가며 치료에 전념했습니다. 통원 치료를 해야 하는 탓에 경기도 화성의 친어머니댁에서 살게 되었는데요. 어렸을 적 그토록 원하던 따뜻한 어머니의 품도 잠시, 엄청난 진료비와 약값이 저를 짓눌렀습니다. 미래의 가정을 위해 안 먹고, 안 입으며 살뜰히 모았건만 눈덩이 같이 불어나는 치료비를 감당하기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게다가 통원 치료의 보람도 없이 하루가 다르게 숨쉬기가 힘들어졌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게 되었어요. 화장실을 다녀오는 일조차 지옥을 경험하는 것처럼 힘들었습니다. 살고 있지만, 사는 것이 아니었어요. 하루라도 마음 편히 숨 쉬고 싶었던 저는 위험을 무릅쓰고 폐 이식을 결심했습니다. 이미 진료비와 약값으로 모든 것을 쏟아부은 저에게 폐 이식에 필요한 수술비가 남아있을 리 없었지만 살고자 하면 길이 보인다고 했던가요. 그즈음 대한적십자사에서 보내온 적십자회비 납부 의뢰서를 본 저는 무작정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저에게는 꺼져가는 삶을 되살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와도 같았거든요. 다행히 대한적십자사 부산지사 담당 선생님께서 직접 찾아와 제가 처한 상황을 꼼꼼하게 체크하시더니 ‘위기가정 지원 희망풍차 금고’ 지원금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수술을 앞두고는 적십자봉사원분들이 오셔서 저에게 격려와 응원의 말씀도 해주셨는데요, 지금도 그날을 생각하면 어머니와 함께 있는 듯 따뜻했던 기억이 납니다.

    내가 다시 살아가야 할 이유

    검사를 위해 동의서를 작성하는 김기현 씨의 모습
    검사를 위해 동의서를 작성하는 김기현 씨의 모습

    2017년 5월 4일, 폐 이식 수술 끝에 저는 새 생명을 선물 받았습니다. 관리만 잘하면 1년 후에는 정상인과 거의 비슷한 폐를 가질 수도 있다고 합니다. 4주 정도 입원하고 퇴원한 지금은 경기도 화성에 있는 어머니 집에서 요양하고 있는데요. 덤으로 살게 된 인생, 어떻게 해야 잘 살 수 있을까에 대해 매일 생각합니다. 물론 평생 약을 먹으며 관리해야 하고, 6개월 약값으로 1,700만 원의 비용이 드는 등 앞으로의 삶도 만만치 않을 겁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 솔직히 새 삶을 찾았다는 생각도 잠시, 막막함이 앞서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가 기적적으로 살아나게 된 것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을 거예요. 그 이유를 찾기 위해서라도 저는 세상으로 나가 더 많은 사람에게 희망이 되고,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될 겁니다. 건강을 되찾으면 가장 먼저 생명을 구해준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정기적으로 봉사활동을 할 거고요. 기회가 된다면 다시 돈도 벌고, 항상 원망만 했던 부모님께 효도도 하고 싶습니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것에 만족했던 지난날과 다르게 ‘내가 이렇게 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이었나’를 깨닫는 요즘, 저는 정말 행복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덤으로 얻은 삶이라 생각하고, 여러분께 부끄럽지 않도록 열심히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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