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불어도 흔들림 없이 살겠습니다.

  • 요리 중인 이만수씨
    요리중인 이만수씨

    저는 대한민국 최고의 한식 조리사가 되어 두 딸을 ‘엄마 없는 애들’ 소리 듣지 않도록 잘 키우며 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건강을 잃은 지금, 제가 꿈꾸던 세상은 다시 만날 수 없는 신기루가 되어 사라져버렸네요. 더 이상 잃을 것도, 갈 곳도 없는 저와 제 딸들이 정녕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요? 깊은 절망에 빠진 우리에게 내일은 없어 보입니다.

    병 들고 갈 곳 없어,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아빠와 두 딸

    적십자병원에서 검사 중인 이만수씨
    적십자병원에서 검사 중인 이만수씨

    아이들이 어렸을 때 저는 아내와 헤어졌습니다. 아내와 헤어진 후 홀로 두 딸을 키운다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제가 직장을 잃기 전까지는 가난해도 단란한 가족이었어요. 요리하는 걸 좋아하고 음식에 관심이 많았던 저는 원래 한식 조리사였습니다. 아이들은 제가 만든 음식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며 언제나 ‘엄지 척’으로 화답하곤 했지요.
    하지만 불행은 왜 한꺼번에 찾아오는지... 아내와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저는 일하던 식당을 그만둬야 했습니다. 제때 치료받지 못한 치아를 모두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치아 상실보다 더 큰 문제는 치아와 함께 미각도 잃게 되어 우리 가족의 유일한 생계 수단까지 끊어진 것이었어요. 이가 모두 없어지면서 저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도 힘에 부치고, 음식을 씹을 때마다 너무도 고통스러웠습니다.
    이런 저를 반기는 식당은 어디에도 없었지요. 단순히 일할 수 없다는 좌절보다 당장 필요한 월세와 생활비를 벌 수 없어 두려웠습니다.
    두려움은 더 큰 장벽으로 변해 우리 가족을 완전히 무너지게 했습니다. 치아를 잃고 미각을 상실한 것도 모자라 ‘당뇨’라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은 겁니다. 둘째딸도 초등학생 때부터 소아 당뇨에 걸려 일상생활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이 아이를 지켜줘야 할 저까지 당뇨라니... 하늘이 무너져 내리고, 온 세상이 캄캄해진 것만 같았습니다. ‘누군가 죽음을 재촉하는 것만 같은 이 세상을 살아서 뭐하나...’하는 생각만 들어, 차갑고 어두운 방에 홀로 앉아 가슴을 쓸어내리며 제 신세를 한탄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두 딸을 책임지고 지켜야 할 아빠이기에, 어떻게든 살아야 했습니다. 식당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지요. 일이 없는 날도 많아 손에 쥐는 돈은 한 달에 겨우 40만원 남짓.
    예쁜 두 딸에게 변변한 옷 한 벌, 신발 한 켤레 사주지 못 하는 못난 아빠라 미안하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전에 살던 동네를 찾아가 만수씨와 둘째 딸 전에 살던 동네를 찾아간 모습 새로 이사 온 집에서 이만수씨와 둘째딸들 새로 이사 온 집에서 이만수씨와 둘째딸 이만수씨의 가족사진 이만수씨의 가족사진

    무너져가는 지하 단칸방에서 사라져버린 삶의 희망

    우리 가족은 서울 은평구 응암동 철거 예정지역의 지하 단칸방에 살았어요.
    바람 한 점, 햇볕 한 줌 들지 않아 사계절 내내 쾨쾨하고 습한 그 집이 그래도 좋았던 건 우리 가족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혹독한 겨울 추위와 여름 무더위를 추억 하나로 견디기엔 너무 힘들었지요. 가스비가 밀려 난방이 끊긴 방은 겨울이면 얼음장보다 더 차가웠고, 온기라고는 그저 작은 전기요 한 장에서 나오는 게 전부였습니다.
    아등바등 전기요 위에서 긴긴 겨울을 보내고 나니 어느새 쓰러질 듯 푹푹 찌는 여름이 오곤 했어요. 덥고 습한 방 한쪽에서 휴대용 가스버너로 간신히 밥을 지어 아이들과 허기진 배를 채우며 ‘과연 이 가난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노인도 되기 전에 남김없이 사라져버린 치아, 평생 관리해야 하는 당뇨와 고혈압을 안고 있으니 삶의 희망 같은 건 없어진지 오래였습니다.
    하루하루 무기력하게 살다보니 집안일도 제대로 하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쌓인 잡동사니는 순식간에 집을 장악했고 엉망으로 만들어버렸지요. 쓰레기더미로 가득 찬, 무너져 가는 집이지만 그래도 비바람은 피할 수 있으니 다행이었는데 그마저도 재개발 예정지라 철거를 앞두고 있었습니다.
    밀린 월세를 차감하다 보니 보증금은 소진된 지 오래, 작년 한겨울을 앞두고 저희는 결국 그 집을 비워야만 했습니다.
    그래도 어딘가에 신이 존재하고 하늘 아래 솟아날 구멍은 있는 것일까요? 아슬아슬 벼랑 끝에 다다른 우리 가족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다시는 놓고 싶지 않을 만큼 따뜻한 그 손의 주인공은 대한적십자사였습니다.
    대한적십자사는 우리 가족에게 깨끗하고 아늑한 보금자리를 마련해주었어요. 태어나 단 한 번도 제 방을 가져본 적 없는 두 딸에게 처음으로 방이 생겼고 우리 가족을 위한 부엌도 생겼습니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부엌에서 솜씨를 발휘하여 아이들에게 ‘엄지 척’을 받았던 그 날의 감동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이제 이곳에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마음껏 해먹일 수 있다니,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지 모릅니다.
    무엇보다 가장 고마운 건 치아가 없어 대화조차 힘들었던 저에게 틀니가 생긴 거예요. 틀니가 생기니 아이들과 대화도 많아지고 음식을 씹을 때도 예전처럼 고통스럽지 않습니다. 적십자봉사원분들이 종종 찾아오셔서 불편한 곳은 없는지, 아이들은 잘 있는지 꼼꼼하게 챙겨주고 생필품도 지원해주시니 요즘 하루하루가 정말 살 맛 납니다.

    매실나무 열매 보며, 다시 꿈꾸는 가족

    얼마 전 큰딸과 함께 아파트 개발 공사가 한창인 예전 동네를 찾았습니다.
    원래 있던 집들은 이미 흔적도 없이 허물어졌고 새로운 건물들이 금세 올라올 것 같더군요. 10년 넘게 살았던 그 동네는 힘들었던 만큼 우리 가족의 추억도 많은 곳이라, 감회가 새로웠고 언제 이렇게 세월이 흘렀나 싶었습니다.
    새로 이사 온 집에는 매실나무 한 그루가 서 있어요. 이사 올 때만 해도 겨울이라 앙상한 가지뿐이었는데 봄이 되고 여름을 맞이하니 어느덧 열매가 열렸네요. 주렁주렁 열린 그 열매들을 바라보며 열심히 노력해서 바싹 말랐던 제 꿈도 잎사귀 틔우고 열매 맺기를 기원해봅니다.
    비 온 뒤 땅이 굳는 것처럼 그 사이 두 딸도 심지 굳은 아이들로 자라났습니다. ‘엄마 없는 애들’ 소리는 안 듣게 하려고 부족한 환경에서도 잘 키우고 싶었는데 턱없이 부족한 아빠였지요. 그런데도 티 없이 맑게 잘 자라준 아이들을 보면 정말 고맙기만 합니다.
    미용 고등학교를 졸업한 큰 딸은 피부미용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저를 닮아 요리하는 걸 좋아하는 작은 딸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특성화고등학교 조리학과에 진학하여 멋진 요리사의 꿈을 키우고 있어요.
    저 역시 딸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기 위해 한 달에 한 번씩 병원에 다니며 건강을 관리하고 새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할 수 있게 도움 주신 대한적십자사 관계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최근 어느 책에서 우연히 본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는 시구가 제 머릿속에 계속 남습니다.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두 딸과 함께 힘을 내서 바람이 불든, 불지 않든 더 열심히 살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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